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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학

기후 변화와 국제 정치: 파리협정과 기후외교

by jacobshouse 2025. 4. 9.

1. 서론: 기후 위기 시대의 국제 정치적 전환

기후 변화는 더 이상 환경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국제 정치의 중심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 해수면 상승, 극한 기후현상 증가 등 전 지구적 위협은 국가 간 경계를 초월하여 전 인류가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후 외교(climate diplomacy)는 국제 사회의 새로운 협력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특히 2015년 채택된 ‘파리협정(Paris Agreement)’은 글로벌 기후 거버넌스를 대표하는 상징적 사례다. 본 글에서는 파리협정의 주요 내용과 의의, 기후 변화가 국제 정치와 외교에 미치는 구조적 변화, 그리고 향후 과제를 중심으로 국제적 대응 전략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2. 파리협정의 주요 내용과 국제 정치적 의의

파리협정은 2015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제21차 당사국총회(COP21)에서 196개국의 만장일치로 채택된 국제 환경 협약이다. 이 협정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2℃보다 훨씬 아래로 유지하고, 1.5℃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국제사회에 촉구하며,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국가별 감축목표(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를 자율적으로 설정하게 한다. 파리협정의 가장 큰 특징은 구속력이 약한 대신, ‘상향식(bottom-up)’ 구조를 채택함으로써 각국의 실정에 맞는 목표 설정과 이행을 유도한다는 점이다.

기후 거버넌스 측면에서 이는 전통적인 ‘국가 중심의 강제 모델’에서 벗어나, ‘참여 기반의 유연한 합의’로 전환된 중대한 사건이었다. 특히 개도국과 선진국 간 책임과 역할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공동의 목표 아래 협력 구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의미가 크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 등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의 참여를 이끌어냈다는 점도 국제 정치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된다.

기후 변화와 국제 정치: 파리협정과 기후외교

 

 

3. 파리협정 이후 기후외교의 전개와 국가 전략

파리협정 이후 각국은 NDC 제출과 이행을 통해 기후 목표 달성을 위한 외교적·정책적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유럽 그린 딜(European Green Deal)’을 통해 2050년 탄소중립을 법제화하고, CBAM(탄소국경 조정제도)을 도입해 기후 정책을 무역 정책과 연계하고 있다. 미국은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파리협정에 재가입하며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50~52%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설정했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청정에너지 전환을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은 ‘2060년 탄소중립’ 선언 이후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 전기차 보급, ETS(배출권거래제) 시행 등을 통해 국제적 책임을 다하고 있으며, 한국도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채택하고 관련 법·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이처럼 파리협정은 국제 사회에서 기후 외교를 ‘경제 외교’, ‘기술 외교’, ‘개발 협력’과 연결시키며, 외교 전략의 다원화와 협력 방식을 진화시키고 있다. 기후변화가 국가 이미지와 외교력, 심지어 국가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4. 기후 정의와 국제 갈등의 새로운 양상

기후 외교의 진전과 동시에,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를 둘러싼 국제적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책임 분담, 기후 피해에 대한 보상 문제, 기후 금융의 형평성 확보 등이 핵심 쟁점이다. 개도국들은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에 대해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보상을 요구하고 있으며, 2022년 COP27에서는 이를 위한 전용 기금 설립이 역사적으로 합의되었다. 이는 국제 사회가 기후 정의를 제도적 차원에서 다루기 시작했다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러나 실제 이행 과정에서는 기금의 조달 방식, 배분 기준, 수혜국 선정 등을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처럼 신흥국 위치에 있는 국가들의 책임 범위 설정, 아프리카·태평양 소국들의 생존권 주장, 그리고 기후 대응을 둘러싼 안보화(securitization) 논의는 기후 외교를 더욱 복잡한 정치 무대로 만들고 있다. 이처럼 기후 변화는 새로운 형태의 국제 분쟁과 협상의 장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기후 정책은 경제·군사 못지않게 국제 역학을 재편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5. 기후 변화 대응에서의 다자주의와 협력의 미래

기후 변화는 단일 국가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초국경적 문제이기 때문에, 다자주의(multilateralism)는 그 해결의 핵심 전제다. 파리협정은 각국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공동 목표를 향한 상호 검토와 협력 구조를 통해 집단 행동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5년 단위의 ‘글로벌 스톡테이크(Global Stocktake)’를 통해 전 세계 기후 목표 이행 수준을 점검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별 목표를 상향 조정하는 메커니즘은 기후 다자주의의 핵심이다.

국제기구(UNFCCC, UNEP), 다자개발은행(World Bank, ADB), 민간 부문, 시민사회단체(NGO) 등 다양한 주체들이 협력하여 기후 대응을 추진하는 ‘기후 거버넌스 네트워크’는 향후 기후외교의 지속성과 실효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다자주의는 정치적 의지와 실질적 재정 기여, 기술 협력의 균형이 전제되어야 한다. 각국의 이해관계를 초월한 진정한 연대와 상호 신뢰 없이는, 글로벌 기후 대응은 선언에 그칠 위험이 있다.

6. 결론: 기후 외교의 진화와 글로벌 책임 의식

기후 변화는 인류 전체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며, 국제 정치와 외교는 이에 대응하는 중심 축이 되어야 한다. 파리협정은 기후 외교의 새 지평을 연 협정으로서, 국제사회의 연대와 책임을 상징하며, 각국의 기후 행동을 제도적으로 유도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협정 이후의 실제 이행 과정은 여전히 많은 과제를 안고 있으며, 이는 국제 정치의 복잡성과 기후 정책의 구조적 난제를 반영한다.

앞으로의 기후 외교는 단순한 온실가스 감축을 넘어, 사회 정의, 경제 회복, 기술 협력, 에너지 전환을 포괄하는 통합적 접근이 되어야 하며, 이는 국가 이익을 넘어선 지구적 책임 의식에 기반해야 한다. 특히 청년 세대와 시민사회의 참여를 확대하고,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는 형평성 있는 기후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기후 위기는 곧 외교의 새로운 시험대이며, 국제사회가 이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지구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