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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학

해수면 상승과 세계 주요 도시의 대응 전략

by jacobshouse 2025. 4. 11.

1. 서론: 도시와 해수면 상승의 충돌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전 지구 도시들에 직·간접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지구 평균 해수면은 산업화 이전 대비 약 20cm 상승하였으며, 이는 주로 극지방과 산악 지역의 빙하 융해, 해양 열팽창, 지반 침하 등 복합적인 요인에 기인한다. 해안 도시들은 인구 밀집, 고밀도 개발, 경제 인프라 집중이라는 특성상 이러한 위기에 매우 취약하다. 유엔 해양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40% 이상이 해안 100km 이내에 거주하고 있으며, 2050년까지 10억 명 이상이 해수면 상승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현실은 ‘도시 설계’와 ‘기후 적응 전략’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2. 해수면 상승의 원인과 도시 리스크 구조

해수면 상승은 지구 온난화에 따른 자연 현상의 누적 결과이다. 첫째, 남극과 그린란드, 고산지대의 빙하가 녹으면서 담수가 해양으로 유입된다. 둘째, 해양 열팽창은 온도가 상승한 해수가 팽창하면서 수위가 높아지는 물리적 현상이다. 셋째, 해양 순환 변화나 지반 침하 같은 지역적 요인도 도시별 해수면 상승 체감에 차이를 만든다. 예를 들어, 자카르타는 연간 10~15cm의 지반 침하를 겪으며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가라앉는 도시로 꼽히고 있다.

해수면 상승은 단순한 침수 문제를 넘어 인프라 파괴, 식수 오염, 질병 확산, 경제적 피해, 주거 불안정 등 다양한 2차 리스크를 동반한다. 침수는 도로, 지하철, 통신, 전력망 등 필수 기반시설의 마비를 초래하며, 이는 경제 활동 중단과 사회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욱이 저소득층이 많이 거주하는 저지대일수록 피해가 집중되며, 도시 내 사회적 불평등까지 심화된다. 이에 따라 도시 차원의 기후 리스크 분석과 대응 전략 구축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 과제가 되고 있다.

해수면 상승과 세계 주요 도시의 대응 전략

 

 

3. 네덜란드와 방어 중심 전략의 모범 사례

해수면 상승 대응의 대표적 선진 사례로는 네덜란드가 있다. 국토의 1/3 이상이 해수면보다 낮은 이 나라는 ‘물과의 공존’을 전제로 도시 설계를 발전시켜 왔다. 대표적으로 로테르담은 “기후 적응 도시”라는 개념 아래, 다층적 방재 전략과 혁신적 수변 건축 기술을 도입했다. 거대한 방파제와 배수펌프 시스템뿐 아니라, 빗물을 임시 저장하는 ‘물광장(Water Square)’, 부유 주택(Floating House), 지하 수로 네트워크 등 물관리 인프라를 도시 전역에 통합하고 있다.

또한 “Room for the River” 프로젝트는 강의 제방을 단순히 높이는 대신 범람 시 물이 자연스럽게 빠질 수 있도록 강 주변의 유휴지를 확보하고, 이를 공원·문화 공간으로 재활용해 도시 생태와 여가를 동시에 고려했다. 이러한 사례는 해수면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도시 설계 자체를 재구조화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네덜란드는 단기적 대응을 넘어서, 해수면이 수 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지속 가능한 도시 방어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4. 아시아 도시의 위험 노출과 실험적 대응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동시에 해수면 상승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대륙이기도 하다. 특히 방콕, 마닐라, 다카, 자카르타 같은 대도시는 삼각주에 위치해 있으며, 지반 침하와 급속한 인구 증가로 인해 기후 재난에 극도로 취약하다. 방콕은 매년 수십 건의 침수 피해를 겪고 있으며, 도심지에 인공 저수지와 지하 수로를 결합한 ‘스폰지 도시(Sponge City)’ 모델을 도입하고 있다.

자카르타는 도시 전체가 해수면보다 낮아져 대통령령으로 새로운 수도 ‘누산타라’로의 이전을 진행 중이다. 마닐라는 해안 방파제 외에도 해안 도로 고가화, 주거지 고도화 등의 도시 리모델링을 병행하고 있다. 서울과 도쿄는 대규모 지하 배수터널과 도시 내 permeable surface(투수성 지면) 확대를 통해 집중호우 및 해수 역류 피해에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 도시들의 공통된 과제는 재정 부족, 정책 일관성 결여, 빈민가 재정착 문제, 민관 협력 부재 등이 있으며, 단기적 대응에서 장기적 도시 회복력 강화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5. 북미와 유럽 주요 도시의 융합 전략

북미에서는 마이애미, 뉴욕, 보스턴이 대표적인 해수면 상승 대응 도시로 꼽힌다. 마이애미는 매년 평균 2cm의 침수 위험에 직면하며, 주기적인 ‘고조(flood tide)’로 인해 도로가 상시 침수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도시 전체의 고도 상승을 위한 건물 리모델링과 도로 재포장, 해안 재자연화(Restore the Shoreline) 프로젝트 등이 실행 중이다. 뉴욕시는 ‘빅 U(Big U)’ 프로젝트를 통해 맨해튼 남부 해안을 따라 연속된 홍수 방벽과 친환경 공간을 설치하며, 사회기반시설 보호와 주민 삶의 질 향상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유럽의 런던은 템즈강 방어벽(Thames Barrier)을 중심으로 한 물리적 방어 인프라에 의존하면서도, 도시 녹지 확대와 지하 기반시설 복원으로 도시 탄력성을 높이고 있다. 코펜하겐은 빗물 관리 중심의 도시 계획을 수립하여, 공공광장과 도로를 침수 시 일시적인 수로로 전환 가능하게 설계하고 있으며, 시민 교육과 디자인 혁신을 결합해 ‘기후 복원력 도시(Resilient City)’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처럼 북미와 유럽 도시는 물리적 인프라 구축과 도시 생태 기반 개선을 융합한 전략을 통해 해수면 상승에 적응하고 있다.

6. 결론: 해수면 상승 시대의 도시 전략 방향

해수면 상승은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기후 변화가 계속되는 한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도시 적응 전략이 필요하다. 물리적 방어 인프라의 확충은 물론, 도시 구조의 재설계, 사회적 약자 보호, 지속 가능한 재정 기반 마련 등 다층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기후 회복력을 갖춘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학, 생태학, 사회학, 경제학이 융합된 통합적 기후 계획이 필수적이다.

무엇보다도 도시 설계는 변화하는 자연 조건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구조(flexible infrastructure)’로 진화해야 하며, 시민들의 인식 변화와 참여 역시 중요한 축이 되어야 한다. 국제사회는 도시 간 경험 공유와 공동 대응 체계 구축을 통해 각 도시의 지역적 조건에 맞는 맞춤형 전략을 발전시켜야 하며, 기후 적응을 더 이상 소극적 대응이 아닌 적극적 도시 경쟁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해수면 상승은 도시의 생존 조건을 다시 쓰는 변수이며,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미래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다.